미국에서 떠오르는 한인 작가에 속하는 박소현의 『작은 땅의 야수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읽어보았다. 파친코가 일제강점기 아래 일본을 건너간 저마다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빼앗긴 이 땅에서 그 시절을 꿋꿋이 살아간 개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p.603)
1917년 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으로 짐승을 쫓던 사냥꾼 남경수가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일본인 장교 야마다 겐조를 구해준다. 생명을 구해준 사냥꾼에게 은제 담뱃갑을 건네주며 운명처럼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기로 한 옥희와 사냥꾼이 죽고 떠돌이 아이들의 대장이 된 그의 아들 남정호가 중심축이 되어 주변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생이었지만 예인으로 성공의 길을 걸으며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옥회와 옥희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마음에 품었던 남정호는 독립운동에 몸을 담는다. 나라의 앞날보다 자신의 사리사욕과 안위를 더 중요시 했던 김성수, 남정호의 스승이자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이명보, 옥희의 뒷바라지로 학업을 마쳤지만 기생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떠난 한철, 전쟁터에서 일본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몸소 경험한 일본인 장교 야마다 등 이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넘어 1965년까지 장대하게 펼쳐진다.
특히나 호랑이 가죽 하나, 곰 가죽 둘, 그리고 코끼리 상아 한 쌍을 염두에 두고 있지. 호랑이만큼은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아. 일본에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거든. 영토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데도 말이야.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 울 따름이야. (p.513)
건국 신화에도 등장하며 서울올림픽대회 마스코트로도 선정된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공포와 경외의 대상인 호랑이가 등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호랑이의 기백을 보여주듯 강인한 정신력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인물들을 그려낸다. 한낱 비천한 출신으로 천대받을 수 있는 기생을 그 시절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선택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내세웠다는 것도 신선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제강점기를 살아나가고 역경을 헤쳐나간 다양한 삶이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파친코』가 당연히 떠오르게 되는데 사실 『파친코』와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라 비교가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아픈 역사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이야기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이런 대작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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