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출청소년(이하 ‘가청’이라고 말하겠습니다)의 이야기인 전작 <박화영>(2017)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극도의 리얼함에 불편함’을 느낀다고들 한다. 불편함의 본질은 조건만남, 폭력, 살인의 3가지 요소로써. 그러한 것들이 <리얼리즘>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사실 영화라는 것은 보편적 현실보다는 특수한 사건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고 위의 3요소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실재할수 있고 실재했던 사실들에 기초했기 때문에 인정한다. 가장 충격적인 후반의 살인도 2014년 김해여고생 암매장사건 가출팸들의 조건만남 남성 살인사건에서 소재를 끌어온 것이었다.
다만 독립영화의 호흡으로 장편영화를 만들다보니 박화영의 가출팸에서의 엄마 역할이 실제 가출팸의 엄마 역할보다 매우 과장되었었고, 가출상태에서의 은미정이 학교에 등교하는 것이나 연예기획사 연습생으로 생활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었고, 특히 결말부분 살인사건의 죄를 박화영이 뒤집어쓰는 이야기는 현재 경찰수사능력도 무시하고 사건과도 너무나도 다른 내용이라 <억지>로 결말을 맺는 부족함이 다소 거슬리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2010년대 초중반의 가청들의 현실과 상당부분 부합한다는데는 공감한다. 다만 결말은 가청들이 조건만남 과정에서 폭력과 살해의 위험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특수하게 발생했던 봉천동 조건만남 가출여중생 살인사건을 결말로 재현했으면 <억지>의 결말보다는 더욱 더 충격적인 <리얼>한 결말로 구현되었을텐데라는 아쉬움 정도가 남았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몰라요>(2020)의 리얼리즘은 어떠할까?
임신하여 가출한 세진의 이야기를 통해 가청들의 낙태라는 숨막히는 현실을 조명한 영화이다. 낙태브로커에게 성폭행 당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병원 브로커에게 사기 당하다가 찾아간 쉼터에서 입양을 원하는 부부를 만나 출산 준비중에 자연 유산된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스토리의 골격이다. 이 영화에 대하여는 감독 스스로가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촬영이나, 음악, 연기 보다는 스토리 구성이 <리얼>인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 초반에 임신을 해결하고자 찾아간 낙태브로커와의 장면과 대화를 보는 순간 ‘어,,이건?’ 하고 생각난 것이 있었다. 2019년 4월 헤럴드 경제에서 정세희, 성기윤 두 기자가 연재한 <청소년 낙태 리포트>와 동일한 내용이었다. 영화속 대사 "내가 너희들 같은 애들 진짜 많이 도와줬거든" 이라는 대사는 신문 기사의 '나 세명이나 도와줬어' 라는 대화와 정확하게 오버랩 되었다. 영화제목도 신문연재기사 제목에서 가져온것으로 생각든다. 연재기사 7편의 제목이 <어른들만 몰라요..10대들의 진짜 성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료 : 헤럴드경제 홈페이지>
그리고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의정부 유흥업소로 찾아가는 세진과 주연에게 발생하는 현실은 상당부분 2010년대 중후반 가청들의 낙태현실과 부합하였고 공감되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이후로 전개되는 사건들은 설득력 없는 애정과 갈등, 폭력만이 지배하였다.
사실 2010년대 중후반 가청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과정들은 주로 가출팸 자체적인 의도보다는 조폭들에 유인되면서 발생하였고 조폭들 비호하에 보도방을 뛰는 강제적인 인신매매 성격이 강했다. 그러한 것들을 담지 못하다 보니 세진이 경찰서에서 그대로 훈방조치되는 것에서는 현실과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조폭들에 의한 가청 착취를 담아냈으면 더욱 <리얼>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영화 후반 청소년 이동쉼터를 방문한 이후 입양예정 부부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출산준비를 하는 과정들은 극도로 비현실적으로 거부감까지 느껴졌다. 전작에서의 <억지> 결말 보다도 <억지>가 더욱 심해졌다. 청소년 이동쉼터를 찾아 상담하는 임신한 가청들이 영화에서처럼 처리되는 경우는 없다. 기본적으로 입양예정 부부들 신원은 절대로 알수가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에서는 상담사가 입양예정 부부에 대해서 이모, 이모부로 생각하라고 만남을 주선하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같이 생활하지만 아웃리치요원(거리상담사)들이 입양예정 부부를 직접 주선해서 만나게 해줄수 없다. 이것은 아웃리치요원의 업무매뉴얼을 무시한 왜곡된 상상력이며 전국의 쉼터 운영자들이 문제제기를 할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오히려 세진이 영화속 쉼터를 방문한 이후로는, 쉼터에서 출산 지원기관을 연계하여 제공하고 거기서 같은 상황으로 출산하러 온 다른 가청들과의 어려운 생활모습들을 그려내는것이 더 <리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동쉼터 자료 : 서울시립아동청소년쉼터 홈페이지>
최근들어 가청들의 스마트폰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은 급속도로 진화되고 있다. 영화제작이 시작되었을 2019년만 돌이켜 보더라도 가청들의 인터넷 카페와 카톡방이 부지기수이고, 가청들은 거기서 서로 어느 쉼터 쌤은 규율이 엄격하더라, 어디 쉼터가 좋더라와 같이 정보를 공유하며 쉼터와 가출팸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팸들 간에 규칙도 정하고 위계질서도 폭행이 난무하던 전만 같지 않다. 자의로 모였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적인 부분도 이제는 범죄보다는 배달과 편의점등 알바 의존도가 높아졌다. 청소년 쉼터도 아직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가청문제 해소에 상당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이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낙태라는 가장 큰 골격에 있어서 현재 대부분 가청들은 정상적으로 갈수 없는 병원보다는 불법수입되고 있는 <미프진>에 의존하고 있다.
< 자료 : 미프진 불법수입업체들의 홍보 홈페이지 캡쳐>
* 이러한 업체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근 할수는 있으나 자궁외 임신 등의 부작용등 위험성이 많으니 의사 처방없이 절대로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자료는 내리라고 하면 내리겠습니다.
98년 IMF이후 급속히 증가한 가청은 지금도 늘고 있다. 인구 감소가 우려되는 현실에서 가청문제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중 하나가 될것이고 이에 대한 해결은 사회와 국가의 문제이다. 결손가정, 폭력가정과 가청에 대한 비난보다는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사회속으로 흡수할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고 이 영화는 그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가청들은 주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거리를 떠돌고 있다. 폭력과 학대가 그치지 않는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정책만을 고집할것이 아니라 프랑스 법제처럼 가청들의 가출신고를 하지 않는 부모들은 형사조치함으로써 가출신고가 활성화되게 하고 이를 통해 가출실태가 국가차원에서 보다더 정밀하게 관리되는 시스템을 수립하고, 가청들의 부모에게는 부양의 의무를 지워 가청들의 생활비를 징구하는 법령 도입도 검토해볼만 하다. 그리고 불법낙태를 해결하기 위한 미프진의 합법적인 처방을 둘러싼 의약계의 대립과 갈등은 조속히 해결하여 가청들의 낙태고민도 덜어주어야 한다.
어른들은 몰라요?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모두 외면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래서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것 한번 더 봐줘라고 다시 이야기해야하는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나 영화가 충격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리얼리즘>에 너무 <억지>를 부가함으로써 오히려 <리얼리즘>을 훼손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많이 아쉬운 영화이다.
(한줄평) 억지 결말로 훼손된 리얼리즘이 강요하는 찝찝함, 다만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한번은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영화.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2019년 4월 헤럴드 경제에서 정세희, 성기윤 두 기자가 연재한 <청소년 낙태 리포트> 7편까지를 한번 읽어보고 가면 찝찝함과 불편함은 다소 감소될 것 같다. 그리고 끝까지 다보기 보다는 장편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 생각하고 세진과 주영이 지하도에서 헤어지는 장면에서 영화관을 나오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쉼터 방문 이후의 억지 이야기는 오히려 안보느니 못하다.
출처 > Art Collector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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