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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본보기가 되는 건 싫어요.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에요”

이태원프리덤@ 2021. 1. 24. 01:03


  라라는 사춘기 연령의 학생이다.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어느정도 대신한다. 집안일에 익숙하고 동생을 챙기는 일에 능숙하다. 라라는 발레리나를 꿈꾼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해서 훈련강도도 높고 연습량도 많다. 발레를 하려면 발가락으로 몸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하면 작은 몸을 지탱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몸무게를 감당하는 단련이 되는데 라라는 무르고 여린 발가락으로 커버린 몸을 받쳐내야 한다. 쉽게 단련되지 않지만 훈련은 쉴 수 없다. 라라의 눈동자에는 긴장이 바짝 서있다.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간다. 게다가 라라는 성전환수술을 앞두고 호르몬약을 복용하고 있다. 호르몬제는 복용하고 있어서 신체적으로 여자로 보이지만 아직 수술을 하진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성기를 지니고 있다. 발레복을 입고 발레연습을 하는 것이 라라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여자 발레복을 입으려고 압박테이프로 성기를 몸에 바짝 당겨 붙인다. 그래서 연습 중에 화장실을 갈수도 없고 물을 마시지도 못한다.



  이 영화가 벨기에 영화여서 그런지 청소년기의 학생이 성전환수술을 하겠다는데도 가정과 사회가 모두 협조적이다. 아버지와 함께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상담도 지속적으로 받는다. 학교에서도 라라의 정체성에 대해 존중한다. 하지만 여자이기도 하고 남자이기도 한 라라의 신체에 대해 또래 친구들의 호기심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또한 여자이지도 남자이지도 못한 자신의 상황 때문에 이성에게 쉽게 마음을 열거나 맘 편히 다가서지 못한다.  발레연습을 하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많고 체력소모도 크다. 하지만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체력도 길러야 하고 휴식도 취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이러기도 저러기도 해야 하는 라라는 심리적으로 궁지로 몰리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거나 힘들다는 넋두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은 고스란히 자신이 감당한다. 눈에 핏줄이 서고 온 신경이 바짝 설때도 라라는 그저 나즈막하게 가쁜 숨을 내쉬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가만히 참고 견딘다.



  라라의 캐릭터를 이해하면서 영화를 한참 보다보면 이 영화도 어딘가 라라같다. 기교를 부리거나 영화적 장치로 화면을 꾸미지 않는다. 겉으로 치장하기보다 뼛속부터 여자이고 싶은 라라처럼 영화의 맨 얼굴로 라라가 되려한다. 과장되거나 감정적인 호소를 덧붙이거나 다른 요소들을 덧붙여 영화를 돋보이게 하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수식없이 오직 라라에게 집중한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라라를 똑바로 담아내는 카메라가 라라를 짓누르는 것도 같다. 마치 라라를 압박하는 삶의 무게인 것도 같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라라는 라라가 속한 환경 속에서 정체성에 대해 존중받는다. 하지만 어딘가 숨막히고 목을 죄는 듯한 갑갑함을 느끼는 라라의 감정들은 그것과는 별개인 듯 하다. 사실 잘 해내고 있다고 해서 다 쉽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엄마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성전환수술까지 준비하는 라라는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울 일을 세 가지나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감당하는 라라가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제목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는 라라를 표현하는 단어로 girl은 너무 미미하고 소소하다. 위대하고 거대한 수식어까지 붙이지는 않더라도 차라리 그냥 <라라>라고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라가 girl이기만 했단 걸까. 게다가 벨기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도 아닌데 굳이 영어로 girl이라고 해야 할 이유가 대체... 제목을 너무 대충 지은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삐죽거렸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하루가 지나가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생각들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다가 어느 순간 번쩍! 나는 내 생각을 전복시켰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 어떤 것도 아닌 <girl>이어야만 한다. 영화 속에서 어른들의 시선에 라라는 타인에게 귀감이 될만한 성실하고 모범적이다. 하지만 정작 라라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남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girl이다. 여자같네, 여자나 다름없어! 라는 말 따위는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런 말들조차 필요없는 그냥 girl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 번도 라라를 girl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카메라가 라라에게 바짝 다가가면 피부상태나 화장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관찰했다. 카메라가 멀어지면 체형이나 골격들이 얼마나 여자같은가 견주면서 라라를 바라봤다. 실제 소녀들 중에 기골이 장대하고 피부가 거칠고 화장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이 얼마나 여자같은가 아닌가를 기준을 두고 살핀 적이 있는가. 나는 결코 성차별이나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해왔지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라라는 바로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더더욱 힘들고 견디기 무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온갖 위대한 수식어들은 헤프게 다 내어줄 수 있지만, girl이라는 단어 하나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단한 기준을 세워두고 그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의 제목이 <girl>이 아니라 라라를 더 돋보이게 하는 <위대한 라라> 같은 다른 제목이었더라면 난 아마 내 안에 이런 시선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로 라라 정말 대단하다는 감상만 갖고 이 영화를 지나갔을 것이다.

  수술 시기가 늦어지면 라라는 결코 girl일 수가 없다. girl이 여자이긴 하지만 여자가 girl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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