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와 인물관계, 장대한 전투와 복잡한 심리전까지 흥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컨텐츠로 많이 소개되었고, 그래서 누구나 어떤 형태로건 한 번쯤은 접해봤을 작품입니다. 삼국지를 3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국지는 역사서로 또 문학작품으로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실제 역사가 아닌 삼국지연의라는 역사에 기반한 창작이 가미된 역사기반 소설입니다. 그래서 실제 정사와는 차이가 나는 부분도 많은데 나관중의 입담과 대륙의 허풍이 가미되어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작가들이 이 방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문체로 번역과 평역본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번역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이문열의 평역일 것입니다. 수능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니까요. 한편 일본에서 이문열의 삼국지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바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되겠습니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미야모토 무사시, 수호지, 신 헤이케 이야기와 같은 대작을 만든 일본의 국민 작가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책은 대부분이 장대한 역사극으로 말하자면 삼국지에 최적화된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내에서 출판되는 대다수의 삼국지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의 중역본이라고 해도 될만큼 삼국지의 정석중 하나로 굳혀진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번역본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보는 삼국지의 표준이 되는 기준과 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물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로 번역과 평역을 쓰면서 내용적으로나 삼국지를 보는 시각적으로도 다양해졌고, 정사를 많이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많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조조의 묘사에 있는데 연의에서는 유비를 선한 덕군으로 묘사하고, 조조를 잔인한 악인으로 묘사하여 단순한 선악의 대립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친유비파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유비 중심의 촉한정통론을 중심으로 쓰여지다보니 유비의 대극에 있는 라이벌 조조를 악으로 묘사했었는데 그러한 것을 요시카와 에이지는 촉한정통론에서 탈피하여 조조에 대한 이미지를 확장하여 단순한 악인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하여 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심리를 가진 풍성한 캐릭터로 묘사했습니다. 나쁘게만 받아들여졌던 조조의 재평가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이런 조조에 대한 재평가는 이후 많은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다루어지는데 조조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를 단순한 선악의 기준이 아닌 난세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시대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식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조조의 군주로서의 자질을 현대의 리더의 모습에 대입하여 이상적인 리더의 면모를 재평가하는 시도도 요시카와 에이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또 요시카와 에이지가 애정을 보였던 또 하나의 인물은 공명인데 소설 초반의 주인공이 조조라면 후반의 주인공은 단연코 제갈량입니다. 후반의 이야기는 공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래서 공명의 죽음과 함께 삼국지의 이야기도 서둘러 끝내게 됩니다. 실제 삼국지 정사는 이후로도 많은 이야기가 벌어지지만 요시카와 에이지는 공명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는 도무지 연의를 읽을 마음도 들지 않고, 붓을 들 기력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요시카와 에이지의 공명 사랑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갈량의 죽음 이후의 몇십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말하듯 압축적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만 말하고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제갈량 사후부터 진이 삼국을 통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용두사미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후 대다수의 삼국지 소설들이 제갈량 사후부터 후삼국의 이야기를 건너뛰거나 간략하게 압축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만든 이런 논조 때문인지 다른 작가들도 공명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하여 공명이 죽자 도저히 글을 쓸 기력이 나지 않아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후대의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공명의 죽음과 함께 삼국의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그 후에 따로 한단락을 마련하여 '제갈채'라는 작자의 소감이나 해설에 해당하는 일종의 부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부록에는 공명에 대한 헌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사적으로는 유관장 3형제의 등장과 도원결의를 하는 장면에서 삼국지의 이야기가 출발하지만 삼국의 역사적 의의와 재미는 조조가 등장하면서 부터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웅의 풍모를 가진 조조도 공명이 등장하게 공명에게 주도적 인물의 자리를 내어준다고 말을 합니다. 즉, 삼국지는 조조에서 시작하여 공명으로 끝나는 2대 영걸이 성패를 쟁탈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자신의 말처럼 조조와 공명의 두 영웅을 중심으로 하여 흘러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삼국지에 나오는 황당한 묘사를 배제하거나 나름의 합리적인 설명을 붙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여타의 다른 삼국지에서는 요술을나 저주의 종류가 많이 묘사되고 있지만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를 요술이 아닌 자연현상 등에 따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황건적 장보가 안개와 바람을 일으키고 요술을 펼치는 것을 협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그곳의 자연현상을 요술인 양 속였다고 하고, 적벽 대전에서 공명이 몰고 온 것으로 알려진 동남풍에 대해서도 공명이 이 지방의 이 계절에만 부는 무역풍의 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했다고 하는 등의 환상적인 허구를 걷어내고 조금 더 현실성 있게 합당한 설명을 덧붙이는 식입니다. 판타지가 아닌 가용한 수준에서의 재구성을 한 것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의 삼국지는 정사를 그대로 따르기보단 재미를 위해 창작을 한 곳이 많은데, 일례로 책은 효성 깊은 유비가 어머니를 위해 차를 사려다 황건적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창작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 차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문열의 평역에서는 빠져있습니다. 어릴 때 접한 삼국지 만화에선 항상 이 장면이 등장했었는데 아마 일본의 창작물이 요시카와 에이지에게 영향을 받은 이유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하기 전에 유비가 황건적을 만나 값비싼 차를 빼앗길 뻔하다 장비가 차를 되찾아준 보답으로 보검을 준 이야기, 유비와 부용 아가씨와의 이야기, 학동을 가르치던 관우와 유비의 교류 등 3형제가 만나서 도원결의를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창작이라고 합니다. 유관장 세 사람의 만남에 많은 스토리를 더해서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입니다.
또 초선의 이간계로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틀어져 여포가 동탁을 죽이자 그 사실을 확인한 초선이 자살을 하고 초선의 시로 초선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여포가 초선을 우물에 던져버리는 것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창작이라고 합니다. 이문열의 버전에선 이후로도 초선은 여포를 따라다니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렇게 이야기를 좀더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창작으로 많은 내용을 추가하여 만들어 넣었고 지금은 그 창작이 굳어져서 오리지널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삼국지연의 자체가 실제 정사에 허구를 집어넣어서 쓴 역사소설이기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그것대로 읽고 평가하면 될 것입니다.
이번 요시카와 에이지 원전 완역판 시리즈는 번역이 한 명이 아니라 다수의 번역가가 팀으로 번역을 한 것 같은데 작업을 하기 전에 톤 앤 매너를 맞춘 상태에서 번역을 한 것인지 각 권별로 톤 앤 매너가 튀는 곳은 없었습니다. 여러명의 번역가가 각기 한권씩, 혹은 정해진 챕터를 번역을 하여 붙이게 되면 번역의 톤이 변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느낄 수 없게 일관성있고, 스무스하게 잘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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