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보게 된 중국 드라마 <상애천사천년>을 보고 좋아진 정백연 때문에 보게 된 영화.
예전에 본 <산사나무 아래서>의 주동우도 나와서 신기했다.
그런데 정백연은 음, 캐릭터 특성상 시꺼멓고 꼬질꼬질 가난한 폐인 같은 모습이 많이 나와서 그의 잘생김을 감상하기엔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오랜만에 영화도 좋았다.
2.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 젠칭과 샤오샤오는 십 년 만에 공항에서 재회한다.
영화는 재회한 두 사람의 현재 모습과 둘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과거 모습이 교차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 감상하기도 전에 과거에 그렇게 사랑했을 두 사람이 결국에는 이별했음을 이미 짐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친구가 된 샤오샤오와 젠칭,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자 애인과의 결혼을 꿈꾸던 샤오샤오는 좌판에서 불법 CD를 팔다가 교도소에 들어갈 만큼 가난한 젠칭을 사랑하게 되고 그와 연인이 된다. 둘은 비좁고 어두운 방에서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다.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젠칭은 제자리에 있고, 저 멀리 앞서 나간 옛 친구들의 성공담만이 들려온다.
젠칭은 멋진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없는 처지에 잔뜩 허세를 부려보지만 친구들에게 곧 들통난다.
젠칭은 비참한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젠칭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항상 아들을 기다린다.
살던 집보다도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고, 직장도 그만둔 채 젠칭은 게임에 빠진다.
어느 날 샤오샤오는 그런 젠칭을 떠나고 젠칭은 샤오샤오를 쫓아가보지만 끝내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동력으로 샤오샤오와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고 그토록 바라던 성공을 이룬다.
여기까지 보고, 현재 이별하고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왜 이후에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다 같이 살려고 집을 샀다는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잘못한 거야?
-넌 잘못 없어. 네 생각이 맞아. 내가 널 만났던 것도 아저씨가 널 20년 넘게 키운 것도 다 집 때문이야.
… 집이 없어서 널 떠난 게 아니야. 난 보금자리를 원했어.
-알아. 사랑과 보금자리를 원했지. 이제 둘 다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네 마음을 정말 모르겠어.
젠칭은 샤오샤오에게 말한다. 나는 너 때문에 성공했고 이제 큰 집에서 너랑 살고 싶다고, 이제 사랑과 보금자리 둘 다 줄 수 있다고.
샤오샤오는 니가 가난해서 떠난 게 아니라고 말하고, 그렇게 떠나는 샤오샤오를 젠칭은 역시 붙잡지 않는다.
나도 약간 아리송했다. 어쨌든 둘은 아직 서로 사랑하고,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도 않는데 왜일까.
그런데 젠칭이 만든 게임을 보고 난 후 비로소 샤오샤오의 주변이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이언은 영원히 켈리를 사랑해"
젠칭이 만든 게임에서 이언과 켈리가 만나고 무채색의 게임 화면에 색채가 입혀진다.
샤오샤오가 젠칭을 떠난 건, 젠칭이 더 작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도,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도 아니었다.
젠칭이 자기 연민과 절망감에 빠져, 샤오샤오에 대한 사랑마저 잃은 것처럼 보였을 때, 그리고 끝내 떠나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을 때 샤오샤오는 젠칭을 떠났다.
켈리는 이언 곁에 꼭 붙어있어야 해.
이언이 꼭 붙잡으면 헤어질 리 없지.
이언과 켈리가 함께 있으면 우주 어디를 가도 겁날 게 없을 거야.
이언이 켈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이 무채색이 되지.
샤오샤오가 원하던 것은 젠칭이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그녀를 꼭 붙잡아주는 것이었다.
젠칭의 아버지가 바라던 것이 돈 많은 부자 아들이 아니라, 그저 자주 얼굴을 보고 소식을 들려주는 아들이었던 것처럼.
그런데 부자가 되어 돌아온 젠칭은 정작 샤오샤오가 듣고 싶은 말은 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 이제 부자가 되었어, 큰 집을 샀어,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 고 말할 뿐이다. 그녀가 확인받고 싶던 건 변하지 않는 사랑이었는데.
이때 현실 시점의 흑백 화면에서 둘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때 네가 안 떠났다면, 우린 그 이후에 달라졌을까?
-그때 네가 용기 내서 지하철에 올라탔다면, 난 네 곁에서 평생 함께 했을 거야.
-그때 우리가 안 헤어졌다면?
-그래도 결국엔 헤어졌을걸.
-만약 그때 돈이 많아서 큰 소파가 있는 큰 집에서 살았다면?
-네가 끊임없이 바람피웠겠지.
-이도 저도 안 따졌으면 결혼하지 않았을까?
-진작에 이혼했겠지.
-네가 끝까지 내 곁에서 견뎠다면?
-네가 성공 못했을걸?
-애초에 베이징에 안 갔다면? 네 바람대로 다 됐다면?
-결국 다 가졌겠지. 서로만 빼고.
끊임없이 만약을 가정하고 과거를 얘기하는 젠칭에게, 샤오샤오는 어찌 됐든 우리는 헤어졌을 거라며 비관적으로 말한다.
샤오샤오가 젠칭을 떠나기 전에 이미 그녀에게 소홀해지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던 젠칭이다.
그런 젠칭의 사랑이 또다시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 어려웠으리라.
3.
영화를 보면서 샤오샤오 캐릭터가 정말 의외였다.
초반에 부자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벼르는 '속물 같은'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샤오샤오가 가난한 젠칭에게 굉장히 순정적이다.
교도소에서 갓 나온 젠칭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도 지쳤으면서 절망에 빠진 젠칭을 다독이며,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건 젠칭이다. 그리고 그렇게 샤오샤오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먼저 결혼을 해버린 것도 젠칭이다.
또 둘의 사랑이 안타까우면서도 젠칭의 가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러브레터>도 생각났다. 난 그때도 죽은 남편의 가슴속에 묻힌 거대한 첫사랑의 그림자에 괴로워하는 히로코가 안쓰러웠는데,
젠칭이 영화에서 하는 양도 결국 그게 아니었나 싶어서.
저렇게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애틋해할 거라면 끝까지 샤오샤오를 붙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젠칭은 마지막까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사랑하는 사람을 설득하고 확신을 줄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렇게 사랑한다던 그녀를 포기한다.
십 년 세월이 흐르고 다시 미련을 보이는 젠칭에게 내가 너를 놓친 거라며(I missed you) 선을 긋는 것도 결국은 샤오샤오의 몫이다.
사실 이렇게만 말하기에는 젠칭의 절망적인 상황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이해되고 안쓰럽지만,
그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하기에는 그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샤오샤오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4.
젠칭과 샤오샤오의 사랑 얘기를 중점적으로 감상을 썼지만, 사랑보다는 인생 영화에 가까운 것 같다.
성공을 꿈꾸지만 좌절되고 지치고 변하는 모습이나, 그토록 바란 부와 성공을 얻었음에도 가장 원하는(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평생 애틋해하며 후회하는 것들이 그랬다.
마지막 아버지의 편지도 슬펐고, 엔딩 크레딧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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