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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책 리뷰(하얼빈)

이태원프리덤@ 2022. 12. 22. 15:02
책은 안중근이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동양 평화’ 대의를 위해 권총 한 자루,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서른한살의 청춘 안중근을 이야기 한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신문 속 이토의 사진 한장을 보고 이토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안중근은 얼굴을 명확히 모른 상태에서 진행시키는 판단이 맞는지 총을 겨눈 후에도 몹시 궁금했을 테지만 묻지 않았다. 주변의 상황을 보며 이토를 겨눈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행동들은 진중하고 말을 아끼는,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안중근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가족을 생각하면 일을 그르칠까하여 생각하지 않으려는 모습과 총을 겨누기 전 아이들과 처를 보지 않은 것이 거사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된 것이라 생각하며 가족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들은 고통이 얼만큼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절제된 문장들이 감정을 누르고 있음을 고스란히 느껴졌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안중근을 잘 표현된 것 같았다.

수의를 보낸 어머님의 기록보다 나는 세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부름에 아들들을 데리고 하얼빈으로 찾아간 김아려가 대단했다. 후기에서 김아려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나오고 살아 남은 아들, 딸마저 일본의 기획에 의해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면 살아남은 자들 또한 죽음과 다를바없는 암울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안중근은 취조를 당할 때 응칠이라는 이름을 말한다. 안중근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 주느라고 무거울 중과 뿌리 근을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었지만 개명은 안중근의 기질을 바꾸지 못했다고 했는데 안중근도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인을 대표하여 세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고 죽음을 이미 각오하며 잡힐 때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 코레아 후레(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내면에서 슬픔과 응원이 끓어올랐다.

생각보다 이토를 총으로 쏘는 내용은 아주 짧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는 안중근은 이토를 죽이는 것이 조력없이 홀로 실행하는데 이토를 죽이는 것이 성공하지 않을 수 있음에 대한 불확실함이 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에 대한 걱정보다 ‘이토의 존재를 소거해야 한다’는 마음이 가리키는 바를 따르는 안중근의 뿌리처럼 내린 우직함이 안중근을 버티게 한 것은 아닐까.

나도 담담하게 청년 안중근의 삶을 잘 따라가며 읽고 있다 생각했는데 동생 안정근, 안공근이 안중근의 시신을 돌려달라며 감옥 문 앞에서 요구했지만 불가하다는 통보에 ‘땅을 치며 울었다’ 는 문장 하나에 가슴이 저민듯 슬펐다.

읽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감정이 들었지만
이 무거운 감정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가지고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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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기억에 남는 문장>>

일본군이 숭례문 문루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일본군과 싸웠다. 일본군이 숭례문 문루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쏘았다. 가리에 시체가 쌓였더. 한국군 병사들이 흩어져서 민가로 숨었다. 일본 군인들이 일본 여자를 앞세워서 민가의 내실을 수색했다. 잡히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다. 달아나던 한국군 병사들은 고립된 일본 군인들을 만나면 묶어놓고 때렸더. 때려서 죽였다. P71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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