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예/책 리뷰

[하얼빈] "약육강식의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생각하며"

이태원프리덤@ 2023. 8. 29. 15:03
예전에 《칼의 노래》를 재밌게 읽은 후, 오랜만에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그래서 얼른 책을 손에 집어 들고 읽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안중근의 출생부터 이야기하는 일대기가 아닌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다. 그렇게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동안의 서술이 번갈아 이어지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이 빠르게 읽어나갔다. 이토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안중근은 어떤 마음으로 하얼빈으로 향했을까? 지금의 안중근을 있게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더욱 궁금해졌다. 그렇게 이토를 저격하기까지가 소설의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경찰과 검찰이 안중근을 조사하며 남긴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을 바탕으로 한 극도의 실재감을 담은 대화가 담겨있어 가슴 뭉클하고 또 먹먹해졌다.

그리고 이번 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읽게 되었다. 두 번 읽어도 좋은 책들이 있다. 그리고 두번 세번 또 읽고 싶은 책도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처음엔 보이지 않던 단어들도 문장들도 작가님이 고심하고 고심했을 문체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한 작가님의 인터뷰도 찾아보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다시 읽으니 재미와 몰입도가 더 높아졌다. 그래서 읽기 전에 또는 다 읽고 나서라도 한번 쯤 생각해보면 좋을 책과 관련한 이야기들 몇가지를 정리해본다.
1.
《하얼빈》은 작가께서 대학 시절이던 50년 전 안중근의 신문조서 기록을 처음 접하고 언젠가는 이 내용을 꼭 글로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게 이제야 완성됐다고 했다. 그걸 마치 숙제처럼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년이었던 작가님의 마음 속 품은 결심을 50년만에 연필을 펜을 들고 써내려간 그 결단력과 추진력에 정말 깊이 감동했다. 늘 잊지 않고 생각하셨다는 대목에서 특히.
2.
원래 생각했던 이 책의 제목은 ‘하얼빈’이 아니라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인가. 작가께서 제시한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는데 출판사에서 ‘하얼빈’ 세 글자로 바꾸었고, 동의하셨다고 한다. “‘하얼빈’은 낯설고 불친절한 제목이지만, 비극적 완결성이 있다.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들이 부딪치던 철도의 교차점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하얼빈에서 만나자’는 친절하고 설명적인 제목이지만 주제를 지나치게 노출시켜 긴장이 풀려 헤벌레하다. ‘하얼빈’은 이 소설에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셨다. 과연 책의 제목 하나도 고심하고 또 고심했을, 제목이 주는 그 책의 첫 인상이자 중요한 메시지의 무게감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3.
그리고 다시 읽기의 묘미는 북흐 멤버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
3-1.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던 청년 안중근. 백년도 넘은 지금의 우리 현실을 안중근 의사가 마주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질문에 나는 가장 먼저 분단된 우리 현 정세를 떠올렸다.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궁금해도 그 어떤 소식도 마음대로 묻고 들을 수 없는 그곳과 그곳 사람들.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종전이 아닌 휴전국에 살고 있는,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도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음을 가끔 아니 자주 잊고 살뿐이었다.
3-2. 지금으로부터 백 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있을 우리 시대의 황사영, 안중근 같은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혹은 어떤 인물들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을 던진 나 스스로도 사실 쉽게 한마디로 답하는건 어려웠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오늘날의 청년이라고 했을때 제일 먼저 떠오른 몇가지 단어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빨간 불을 밝히는 말은 높아지는 청년 자살률, 청년 우울증, 청년 고독사
(참고: 10만 명당 자살한 사람을 뜻하는 자살 사망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회원국 38개국 평균 자살률이 10.9명이었는데 한국은 25.7명을 기록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려스러운 건 40대 이상의 자살률은 모두 줄었는데 30대 이하, 특히 10,20대 청년들의 자살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10대 자살률은 2019년 10만 명당 5.9명에서 6.5명으로 9% 이상 늘었고, 20대 자살률은 19.2명에서 21.7명으로 12.8% 급증했다. 특히 10대 남성 자살률은 10만 명당 5.5명에서 6.5명으로 18.8% 증가, 20대 여성도 10만 명당 16.6명에서 19.3명으로 16.5% 증가를 기록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인 내가 가장 슬프고 안타깝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이 사실에 그저 고개 들 수 없이 비참한 마음이지만 아직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비통하고 절망적인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고, 그 곳에는 생존자도 생존자를 있게 한 또다른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충격적인 사고 현장에서 한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한 모든 이들에게 특히 많은 청년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태고 싶다. 혼자만 살아남은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더 많이 구하고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과 슬픔에서 조금은 나아지길 감히 소망하며.
그런 나도 주변에 살고자 하는 모든 청년들의 앞길에 작은 힘이 되어 희미하게나마 빛이 되어주는 동무이자 옆집 언니이자 누나가 되어주고 싶다. 포기하기엔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 수많은 역사 속 아무개 영웅들의 희생이 너무 값지고 또 감사하기에.

책 하얼빈을 통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영웅 안중근이 인간으로서 어떤 고민을 했을지 어떤 고뇌와 어떤 의지로 생각을 몸소 실천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뮤지컬 영웅이나 영화 안중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예술 형태로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감독, 배우, 연출가, 편집가 등 모든 관련분야에 몸담고 있는 분들 역시 우리의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지금의 내가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고
그 사실을 잊지않고 끝까지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지키며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보는 삶 그 안에 있는 모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