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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악의 없이, 계획에 없던 유괴범이 되다!

이태원프리덤@ 2021. 2. 11. 17:01

한줄 평: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1. 이 영화에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다. 그냥 다 불쌍하다.

소년 만화에 나오듯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다. 다들 각자의 사연대로 나쁜 짓을 하면서 인간적인 면을 보이고, 착하지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인신매매범이 '아무리 그래도 산 사람을 여기에 뭍는 건 아니지'라며 혀를 끌끌 차고, 창복(유재명)은 실어증(인지 벙어리인지)의 태인(유아인)을 돌보지만 범죄를 가르친다(?). 또한 초희도 유괴범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여동생을 잘 돌보는 척'을 한다. 위기의 순간에 그런 지혜로운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소년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초희는 태인(유아인) 집에서 태인(유아인)이 집으로 돌아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여동생을 돌보는 것처럼 행동한다. 누워 있다가 갑자기 색연필을 들고 여동생 옆에 서서 가르친다.)


2. 태인은 사랑을 받은 적도 없고, 주는 법도 모른다.

2-1) 태인은 몹시 늙은 할매에게 계란 5개를 찌뿌뚱한 표정으로 나누는 것 보니 소시오패스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합법적이고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그에게 '합법'과 '도덕'을 가르쳐준 사람이 있기는 할까. 유일한 보호자인 창복(유재명)은 그에게 범죄의 길로 인도한 사람이다.(물론 먹고 살려고 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태인은 사랑을 받은 적도 없고, 주는 법도 모른다.

2-2) 그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양복을 입어보고 싶다. 결국 '피가 뭍은' 양복을 억지로 구한다. 양복은 그에게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양복을 입고 초희를 구하러 가고, 양복을 입고 초희를 초등학교로 데려간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 결국 그는 '유괴범'일 뿐이다. 현실에 대한 자각을 초희의 작지만 큰 귓속말로 듣게 된 그는 결국 양복을 벗어 던진다. 정말 너무나 슬펐다.

2-3) 태인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과 용서'일지, '처벌과 제재'일지 고민이 깊어진다.태인이 범죄자이기는 하나 '주체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려고 한다. 창복의 말마따나 일거리 떨어지면 그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를 처벌/제재하기엔 그를 에워싼 주변 환경이 너무나 처절하다. 그렇다고 그를 용서/사랑하자니 그의 인생에 걸쳐 내재화된 악의 평범성을 받아들이기는 위험하다. 너무 어렵다. 그냥 태인이 불쌍하다.

2-4) '저 유괴범 잡아'라는 말에 정신 없이 도망치더니 결국 자켓을 벗어던진 그의 표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표정을 보면 그에게 '사랑과 용서', '처벌과 제재'를 논하기 전에 드는'측은지심'은 어쩔 수 없다.


3줄 요약

1. 인간은 참 착하면서 나쁘고, 나쁘면서 착하구나.

2. 우리(사회)는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기회를 없애야 하는가.

3. 아..참 불쌍한 인간이다. 측은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