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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싱 영 우먼]프라미싱 영 우먼(2020) - 복수,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이태원프리덤@ 2021. 2. 24. 17:01

 

  

  먼저 제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 자기소개 따위는 필요 없고 얼른 옷이나 벗으라고요? , 남자들은 늘 이런 식이라니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디에 사는지, 뭘 하면서 먹고 사는지 심지어 내 나이와 이름조차도 당신들은 애시당초 아무런 관심이 없죠. 자자, 그렇게 발정난 강아지마냥 헉헉거리며 서두르지 말아요. 나도 잘 알아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내 옷을 벗기고 더 쉽게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남자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그것뿐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만 좀 더듬고 아주 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요?

 

  

  나도 한때는 앞날이 창창한 의대생(promising young woman)이었어요. 하지만 7년 전 모든 것이 무너졌죠. 내 제일 친한 친구가 동급생에게 강간을 당했거든요. 남자친구들은 밤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었죠. 결국 내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때 내 친구를 강간한 남학생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 사건을 애써 모른 척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너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거

  그날 이후 나는 단 하루도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데 나와 내 친구의 삶을 잔인하게 망가트린 그 인간들은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낼 수 있는 거죠?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복수하겠다고. 친구를 대신해서 내가 그들의 행복을 짓밟아 주겠다고.



  

  네? 뭐라고요? 당신은 그런 남자들과 다르다고요? 당신은 착한 사람이고요? 거짓말. 남자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에요. 아까 술집에서 날 처음 봤을 때 술 취한 나를 얌전히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가는 길에 당신 집이 있으니까 잠깐 들러서 술 좀 깨고 가자고 했잖아요. 당신 말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은 내게 더 술을 먹이고 날 침대에 쓰러트리고 이렇게 내 몸을 더듬고 있잖아요. 아침이 되면 당신은 말하겠죠. 그건 다 술 때문이었다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이해해요. 내 친구들도 그랬으니까요. 그땐 너무 어렸고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심지어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들조차 내 친구를 탓했죠. 함께 술을 마신 게 잘못이라고. 남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게 죄라고. 아뇨, 그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고 핑계일 뿐이에요. 내 친구의 목숨을 빼앗은 건 술이 아니라 당신 같은 짐승들이었다고요.



  그래요. 이제 얘긴 그만하고 우리 함께 이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건 어떨까요. 야동이냐고요? 아뇨, 이건 더 화끈하고 자극적인 거예요. 이 영상 속에는 제발 그만하라고 울부짖는 내 친구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낄낄거리는 남자친구들이 나오거든요. 어때요? 이걸 보고도 과연 당신은 내게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그만 미치광이 같은 복수를 멈추라고 내게 언성을 높일 수 있을까요

  진실을 감당할 수 있다면, 나와 내 친구를 위해 속죄의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었다면 어서 플레이버튼을 눌러요. 차마 못 누르겠다고요? 그럴 줄 알았어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쯤이면 당신도 깨달았을 테죠. 결국 당신과 나 사이에 진실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오직 복수뿐이라는 걸.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볼까요?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복수는 그래야 제 맛이니까. 준비됐으면 , 다시 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