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Riders of Justice]_우연 아니면 필연? ▒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다”는 말이 있다.
남다른 인연을 강조할 때 자주 쓴다.
하지만 계속되는 우연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혹 우리는 ‘할 수밖에 없는(have to be)’, 또는 ‘해야만 하는(must be)’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연을 남용(濫用)하는 것은 아닐까.
우연은 우연일 뿐일 수도 있다.
거기에 무슨 굉장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갑자기 닥친 불행도 우연에 의한 것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필연이라는 희생양을 찾는다.
그래야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서 들어있는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회피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게 된다.
또한 수단은 정정당당하지 못한다.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진 니데치(Jean Nidetch)'의 말처럼, “우연이 아닌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It's choice not chance that determines your destiny)”는 게 진리다.
덴마크 영화인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Riders of Justice)」는 우연을 마치 필연처럼 접근함에 따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악순환을 그린 영화다.
정말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음모에 의한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정말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사람들이 협력과 대립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의 불행과 실수를 남에게 떠넘기려는, 그 수단으로서 단순한 우연을 필연으로 포장하려는 씁쓸한 우리의 군상(群像)을 담고 있다.
통계 분석가인 오토(니콜라이 리 카스扮)는 해고 직후 지하철을 타다, 모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이어 끔찍한 충돌사고가 일어나고, 오토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오토가 자리를 양보한 모녀 중, 딸인 마틸드만 살아남는다.
죄책감이 시달리던 오토는 사고 당시 영상 속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자신이 탑승한 지하철의 칸에 악명높은 갱 조직(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의 범죄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하려던 조직원이 있었고, 같은 칸에 수상한 사람이 비싼 음식을 먹지도 않고 급하게 내린 것이다.
이에 그는 절친인 레나트(라스 브리히만扮)과 함께, 안면(顔面) 분석가인 에멘탈러(니콜라스 브로扮)를 도움을 요청한다.
그 결과, 수상한 사람이 열차 기술자인 동시에, 갱 두목의 동생인 것을 밝혀낸다.
세 사람은 이같은 결과를 가지고, 마틸드의 아버지이자 현직 특수부대 요원인 마르쿠스(매즈 미켈슨扮)를 찾아간다.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르쿠스는 이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복수에 나선다.
이러는 와중에, 딸인 마틸드도 나름대로의 사건 분석에 들어가지만, 아빠 마르쿠스와의 관계는 최악으로만 치닫는다.
갱 조직 두목의 동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합류하게 된 보다쉬카(구스타브 린드扮)의 증언에 따라, 레나트는 열차 사고가 갱 조직의 테러가 아닌,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갱 조직의 두목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마르쿠스 일행에 총을 겨눈 상태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까.
우리는 불행한 일이 덮칠 때마다, 그 원인을 찾아나선다.
예를 들어보자.
출근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임에도, 기상(起牀)부터 사고 때까지의 일상을 복기(復棋)한다.
10분만 일찍, 또는 늦게 일어났으면, 아니면 아침 식사를 조금 일찍 먹었으면, 아내가 사소한 것으로 바가지를 긁지 않았다면 등등.
그 복기의 대상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복기는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일어날 사고는 일어난다.
자신에게 닥칠 불상사를 시간이나 타자(他者)에게 전가하는 일은 우연을 필연화하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사고를 낸 당사자는 자신이다.
나의 잘못이든, 상대 운전자의 잘못이든 간에, 사고 순간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자신이다.
그것을 필연이라는 억지 수단을 끌어내며,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곪아먹게 만든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에서 모든 사건은 우연이다.
마르쿠스의 딸인 마틸드가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은, 덴마크도 아닌 에스토니아 탈린이란 곳에서 파란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한 할아버지와 소녀의 대화를 엿들은 장물애비에 의해 일어났다.
열차 사고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마틸드는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어머니와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인 마르쿠스가 예정대로 집에 왔으면 어머니가 그 상실감 때문에 시내로 가서 지하철을 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틸드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슬픔의 근원에는 자전거 분실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자전거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전거의 분실이 곧 열차 사고와 직결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말 우연한 사고에 의한 어머니의 사망을 자전거 분실에서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건과 연계시킨다는 것은, 자신의 과오와 상실에 따른 분노를 또다른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통계 전문가 오토의 말처럼, 모든 사건들은 다른 사건 및 다른 사람들의 삶과 무한대가 아닌 큰 방정식 안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또한 모든 일에는 거기엔 수 백억의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우연이라는 현상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필연이란 정말, 몇 억분의 1과 같은 확률 하에 우리에게 찾아올 뿐이다.
이 영화를 선택한 8할의 이유는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이다. 덴마크의 국민배우나 다름없다.
할리우드 영화에 주력하던 그가, 오랜만에 모국 영화에 출연했다. 영어가 아닌, 덴마크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명불허전이다.
나머지 배우들은 낯설어서 평가를 보류하는 게 낫지만, 그래도 따발총처럼 수다를 떠는 레나트役의 '라스 브리히만
(Lars Brygmann)'은 기억에 남는다.
고대 로마의 시인인 '오비디우스(Publius Naso Ovidius)는 “우연은 항상 강력하다. 항상 낚시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는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묵묵히 일상생활을 영위해가면, 우연은 때로는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연은 인생의 동반자다.
물론 불행도 함께 찾아올 수 있다.
우연에 의한 행운, 불행은 필연이 아니다.
그저 늘 하고 있던 일에 얽혀 있는 실타래다.
모든 일엔 수많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연도 그 중의 하나다.
우연을 필연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자.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단지, 우리에게 조금 위안과 희망을 줄 필요는 있다.
그렇기에 행복할 때만, 우연을 필연으로 생각하는 것은 허용하자.
※ 영화 초반, 불편했던 점 한 가지...
덴마크에서는 현대와 기아차가 저소득층이 타는 자동차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도요타, 포드, 볼보를, 상류층은 메르세데스, 테슬라, 아우디를 탄단다.
영화에서 이같은 결론은 덴마크의 46개 지방 자치단체로부터 82,504개의 세금 신고서를 찾아 조합해 통계적인 근거 하에 만들어진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부분은 덴마크에 가면,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이런 ×같은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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