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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해탄적일천(海灘的一天 That Day, On The Beach) 감상문

이태원프리덤@ 2022. 1. 4. 17:01

해탄적일천(海灘的一天:That Day, On The Beach)


1983년작 (2시간 40 분)


감독 : 에드워드 양

주연 : 호인몽(피아니스트 칭칭 역) 장애가(가리 역)

이 영화는 주인공 '가리' 남편의 실종 사건으로 하루 동안 해변에서 가리가 겪어온 삶을 회상하는 것을 '가리 오빠'의 정략결혼으로 헤어져야만 했던 피아니스트 칭칭이 가리를 만나 가리의 집안과 그 주변인들의 삶을 들으면서 자신의 사유를 담은 일인칭 회고로 끝나는 영화이다.


가리의 아버지(의사)의 정략적인 결혼을 수용한 가리 오빠(의사)의 행복하지 않은 삶이 조명되고, 가리마저 정략 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 가리는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야반도주를 한다. 이처럼 가리 집안의 남매가 보이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극명한 대조를 통해 당시 경제부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만 사회의 돈의 권력과 지위의 향유를 쫓는 인간 군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쫓은 가리 역시 믿고 사랑했던 캠퍼스 동기였던 남편(회사의 경리부장)의 회사 공금횡령 뒤에는 남편이 꽃뱀 같은 투자가인 여인과의 동거 생활이 있었으며 자살을 가장한 남편의 실종이라는 기가 막힌 현실을 만나게 된다. 

한편 대학강사를 낭만적으로 사랑하여 미국을 쫓아간 가리 여친의 결혼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학강사가 저지른 사기결혼으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에 여인의 삶은 절망으로 치달았다.그러나 이혼 후 다시 삶을 갱생해 간다는 가리의  친구가 옴니버스적으로 삽입되면서 낭만적인 사랑과 거짓에 대한 부조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충동적인 믿음의 선택적 결과가 얼마나 가혹한가라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이처럼 인간에게  해답을 주지 않는 결혼 후 삶의 허무감을 여주인공 '가리'와 친구,  주변인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과 인간의 불확실성을 비판하는 2시간 40분의 다소 길다면 긴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일반적인 타 영화와 견주어 길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 이슈를 가진 등장 인물들이 옴니버스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한 사람(가리)의 단순한 사랑과 결혼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리의 주변인들을 옴니버스적으로 차용하면서, 1970년~80년 사이의 대만의 경제개발과, 자본주의의 물질(돈) 만능과, 돈이라는 권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빗나간 인간 군을 통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신과 불확실성의 폐해를 고발한 하고 싶은 욕심 많은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처음 보면 영화는 조각조각 산만한 느낌을 주지만, 다시 보면 화폭에 전체적인 그림이 모여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계몽이 영화 속에 녹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감독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이지만 그 말에는 틀림이 없다. 


가리 오빠의 사랑의 결말은 아버지의 명령을 쫓아간 정략결혼으로 진부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안주된 의사의 직업과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가 암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오빠의 모습이 한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안락한 생활이라는 것도 배반에 대한 스트레스와 병으로 종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생은 누구도 알 수가 없고 행복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도덕적으로 겉모습이 완벽한 정략결혼의 주범인 가리 아버지의 권위 속에 감춰진 위선, 즉 간호사와 은밀하게 행하는 불륜의 모습과 이를 문틈 사이로 지켜본 당시 어린아이였던 가리의 눈을 통해 부정한 권위와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흔히 이런 경우에 해결되는 현상으로 가리의 어머니가 성적 노리개로 농락당한 간호사에게 건네는 돈 봉투와 같은 장치를 통해 실제로 권력자들이 갑의 입장에서 힘없는 을에게 저지르는 폭령성을 성폭행의 상징성을 통해 감춰진 여타 범죄들이 곳곳에 만연했을 사회상을 소녀의 눈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가리 어머니를 삽입시키면서 가부장적인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남편에게 일부종사하면서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현모양처라는 당시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굴종적인 여인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고발적이면서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것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처럼 해탄적일천은  옴니버스적 기법을 통해 출세와 권력과 성욕이 뒤엉켜 굴러가는 물질만능의 시대에 인간의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남녀 간에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또한 도덕적인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러면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가? 라는 철학적인 인간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는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하면서 차가운 이미지의 아름다운 여인 호인몽(피아니스트)의 일인칭 내레이션을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는 가리의 남편이 실종된 해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 칭칭(피아니스트)을 집으로 초대했지만 아버지의 태도는 냉랭하다.



주인공 가리의 가족사진

파파 보이 아들인 가삼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정략결혼으로 사랑하는 여인 칭칭과 헤어지고 진부한 결혼을 선택한다.

어머니 역은 가부장적인 사회현상에  일부종사하는 말이 좋아 현모양처로 나오지만 여성비하의 모습이다.



아들 가심은 정략결혼을 받아들이고 안정된 의사라는 현실을 택한다.

영화 끝부분에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한다.


가리의 아버지의 이중적인 위선은 권력적인 인간들의 몰염치를 대변한다.

병원에서 간호사와 통정을 하는 장면을 어린 꼬마 '가리' 가 목격한다. 그 다음 장면은 가리의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돈 봉투를 주는 것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이 부각된다.


 





가삼은 행복하지 않는 결혼을 택했지만 가정을 꾸린 그 시대의 가장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 옛 대학시절의 칭칭을 그리워한다. 인생은 사실 답이 없는 것이다.  


가리는 오빠의 전철을 밟지 않고 아버지의 위선에 반항하는 듯 사랑을 택하면서 결국 부모의 뜻을 거부하고 야반도주를 한다.

어머니는 한밤중 가방을 들고나가는 가리를 목격하지만 자신의 일부종사에 대한 회한으로 딸을 붙잡지 못한다.

부모가 좋은 혼처라고 하는 조건과 가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돈의 위세와 허풍과 위선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가문이라는 위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출세와 돈으로 귀결되는 아버지를 비판할 수만 없는 인생의 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아버지의 전근대적인 모습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있는 속물적인 근성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주변의 것들을 잃어야 하는 용기와 모험으로 감내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빈곤이라라는 고단한 삶으로 프레임을 걸고 있다. 

행복이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은 무엇을 하는데 필요한 행복의 선결수단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갈등은 이러한 질문에서 심한 몸살을 가져다준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이 돈 많은 혼처에 시집을 가서 잘 살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임을 비판할 수만 없는 것이 처해진 현실이다. 이런 갈등은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써 지금도 부인할 수 없는 부모자식 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국 마음 다로 행동 따로인 결과물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아들 가삼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동생에 대한 사랑의 응원을 보내지 못한 채 묵묵부답이다. 참으로 이중적이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현실에 타협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 가장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되어야 할 식탁의 무표정한 장면으로 가삼의 가정을 대변하고 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설명의 힘이다.


집을 벗어나 사랑을 택해 '더웨이'에게 간 가리.


둘은 간소하게 결혼을 한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칭칭'은 영화를 끌고 가는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중후한 연기를 펼친다.

감독은 칭칭을 매우 진지하게 절제시키고 있다.


해탄적일천 남편의 자살로 시신을 찾고자 하는 가리의 해변에서의 하루를 놓고 그녀의 전반적인 일생을 회고한다. 그리고 그 회고에 대한 담담한 서술을 칭칭이 일인칭으로 대변하고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리'이지만 중후환 연기를 펼친 '칭칭'이 없었다면 영화는 먹물 없는 오징어와 같은 진부한 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칭칭의 일인칭을 통해 관객인 나는 이 영화가 주는 인생의 교훈을 반추시키고 또한 앞으로 전개될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암시하는 주변인들의 진술로 해변을 찾은 가리는 절망감을 가진다.


한때 행복했던 가리와 남편 더웨이~ 이 시간들을 가리는 실종된 남편을 찾아온 바다에서 회상한다.



가리와 결혼 한 더웨이는 회사 경리부장으로 격무에 시달리면서 가리와의 대화가 적어진다.

친구이자 대학 동창인 사장 역은 외향적인 성격의 난봉꾼이지만 현실적인 사람이고 분명한 남자이다. 더웨이는 가난하게 살아온 내성적인 남자로 사실 속마음을 감춘 음흉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믿을 놈이 없고 사기와 횡령은 믿음에서 당하게 되는 결손이다. 돈이지배되는 사회는 그런 음험한 것들로 충만한 것이다.



가리의 대학 친구인 이 여인은 대학 강사인 남자를 사랑하여 미국으로 갔지만 그 남자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한 마디로 사기결혼을 당한 실패한 인생임을 한탄하면서 절망한다.



















가리와 더웨이의 실체는 서로에게 민낯이 된다. 인간은 순수할 정도로 매우 이기적인 동물이다.

결코 나를 대신할 부대치적인 삶, 사랑, 믿음이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직 각자 도생하는사랑의 정립이 필요할 뿐.. 

칼지브란의 말대로 내가 당신이 필요해도 그 필요가 당신을 붙잡아서는 안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여도 그 사랑을 당신을 얽매이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그런 유토피아적인 사랑이란 애초 없는 것이다.  이상적인 말장난일 뿐이다.























가리의 남편 더웨이를 이용하여 날린 투자금을 회수한 꽃뱀같은 여인.

회사 공금을 횡령한 더웨이는 자살을 꾸민 후, 한몫 챙겨 하와이로 도주했을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숙제로 남긴다.










































현모양처의 가리 어머니


















































































간암으로 죽는 가리의 오빠
















 


칭칭의 절제된 음성과 표정 연기, 아름다운 목소리의 내레이션은 영화를 더욱 빛내면서 종극이 된다.


가리가 아버지의 불륜을 보면서 시작된 소녀에서,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에게 돈으로 배신당하기까지의 고단함을 겪으면서 성장한 여인이 되기까지 지불한 대가가 크고, 인생은 결코 가역성이 아닌 한 번뿐인 비가역성이라는 사실의  냉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에는 복습도 없고 예습도 없는 프로스트 가지않는 길처럼  숲속에 난 두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한 길로 가는 것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단 한 번 뿐인 것이 인생이다' 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