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인종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까.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이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론은 리뷰 말미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가버나움을 보았습니다. 레바논에서 생활하고 있는 12살 소년 자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빈민층의 현실과 어린아이들의 생활들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 안에서의 모든 장면들은 빈민층의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여러 사회문제가 영화 내에서 큰 요소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냥 밝은 영화일 수가 없습니다. 굉장히 창백한 영화 안에서의 사건들은 결말부에 이르러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메시지에 우리는 설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왜 이 메시지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을까요.
먼저, 자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부터 답답합니다. 이 현실을 만든 것은 자인이 아닌 데도 불구, 그들 역시 힘들기에 자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도 하지 않으며 힘든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인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또한 자인이 아끼는 여동생인 사하르는 자인이 평소에 의심했던 대로 동네 상점의 주인에게 결혼을 '당하고' 끌려가게 되지만 부모는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 분노는 자인을 집으로부터 동떨어지게 만들었고, 목적지 없이 떠난 자인은 놀이공원에서 라힐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던 사람인 라힐은 자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인과 함께 생활하고 자신의 아기를 자인과 함께 두며 어려운 생계를 유지해나가지만 사실 라힐은 불법체류자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기에 위조 신분증이라도 만들어야 하지만 그마저도 만들 돈이 없어 자신의 아기를 팔라는 독촉을 받게 되는 인물입니다. 결국 라힐은 국가에 잡혀가고, 이 상황이 바로 영화의 첫 장면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출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현재의 자인이 겪고 있는 상황과 미래의 자인의 상황으로 보이는 법정 재판 장면이 이야기 흐름 중간중간에 주기적으로 비치며, 자인이 누군가를 칼로 찔렀다는 내용과 부모를 고소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러한 기법은 결국 자인의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에 대한 암시와 복선처럼 영화 내에서 보이고 있던 것입니다. 라힐이 잡혀간 동안 자인은 갖가지 노력을 해서 라힐의 아기를 돌보려 했지만 힘에 부치는 일이었고, 라힐에게 위조 신분증을 만들 돈이 없으면 아기를 팔면 해외입양을 시켜준다는 아저씨의 말에 넘어가게 되면서 결국 라힐의 아기를 팔게 되죠, 자신도 입양을 받고 싶었던 자인은 출생 문서가 있어야 된다는 말에 떠났던 집으로 돌아오지만, 거기서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자신은 출생신고조차 안된 사람이었으며, 사하르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죠.
이 장면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행해지는 기본 절차인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장면은 가난으로 인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빈민층의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자인의 동생들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자인이 책임지지 못하고 키울 거면 낳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의 주원인이 됩니다. 결국 부모는 궁핍한 생활로 인해 자식들을 좋은 환경에서 키워내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딸마저 팔아버린 것이죠. 이러한 선택이 가져온 파장은 컸습니다. 딸인 사하르가 11살에 임신을 했고 결국 사망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해 이 이야기를 들은 자인은 사하르를 임신시킨 그 사람을 칼로 찌르게 됩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자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탓일까요 아니면 자인이라는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것일까요. 사실은 가난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이 모든 사태의 범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현실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부모에 의한 교육과 최소한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인의 또래 나이에 나무로 총을 만들고, 담배를 피우며, 폐허가 된 건물을 부시면서 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하지 못할 아이들을 계속 낳는 건 모두의 피해를 가져올 뿐이라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인은 결국 부모를 고소합니다. '절 낳았기 때문에요.'라는 이유로 말이죠. 자인은 결국 교도소에서 계속 생활하게 되고 엄마를 만나게 되지만 엄마는 자기도 힘들다며 자인에게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임신을 했는데 딸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딸의 이름을 사하르로 지어야겠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자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봐요." 아마 이 일로 일해 자인의 생각이 굳어진 것 같습니다. 현재의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지름에도 진정한 고통과 후회를 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지우려 하는 부모의 태도는 자인의 현재를 점점 어둡게 만들고 있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인이 신분증을 만드는 장면으로 끝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이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인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을 보며 우리는 사건의 해결이라는 인상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렬의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미 벌어진 일들은 되돌릴 수 없으며, 자인이 행복해진다고 해도 현실 자체가 변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인은 마지막에 웃습니다. 이것은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는 것이 개똥 같다'라고 말하는 자인의 삶이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삶은 계속 진행되기에 감히 결론과 무의미한 단정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이 아닌, 현실의 상황과 가장 어울리는 엔딩을 택한 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삶에서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법정 장면에서 자인의 아버지의 입장인 세상 사람들이 다 저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겠지만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는 말과 괴롭다는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을 어른이기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을 그대로 물려줄 생각으로 아이들을 낳는다면 그들도 결국 옳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과도 같습니다.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며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자신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사랑받고 싶었다고, 이제 첫 문단의 질문에 대한 제 결론을 내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삶의 질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는 개인의 노력이 있을 수 있지만 출생을 하면서부터 출발점이 다른 경우가 굉장히 많이 존재하구나. 저 환경에서 좋은 삶의 질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올바르지 못했던 사회를 만든 전쟁이나 대립, 가난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이 모든 불행은 시작되고 답습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처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슬픈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은 예수가 축복을 내렸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축복이 유지되지 않은 마을이며, 생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은 성경 속의 마을입니다. 자인이 살고 있는 저 마을도 가버나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 이 공간과 이 환경은 가버나움과 비슷한 공간일까요 아니면 다른 공간일까요.
올해부터 제가 본 영화를 글로 쓰고 있는데, 이 리뷰들을 블로그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이 리뷰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한 번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kjmovie821/2214528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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