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예/책 리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리커버 에디션)]-책 리뷰(좋은 말, 맞는 말이지만..)

이태원프리덤@ 2022. 12. 19. 15:02

스톡홀름경제대학 졸업 후 잘나가던 직장 등 세속의 지위를 내팽개치고, 태국 아잔 차 스님의 숲속 사원과 영국 등 유럽에서 17년간 승려 생활을 하다가 환속한 뒤 루게릭 병에 걸려 2022년 1월 생을 마감한 어느 구도자의 영적 여정. 

 

승려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뿐 아니라 생활하며 힘들었던 점, 환속의 과정, 내면의 갈등을 솔직히 털어놓는 장면들에서 인간적 진솔함이 느껴졌다. 우울의 나락에 빠졌다가 회복하는 등 자기 고백적 글의 전체 흐름이나 일관된 메시지가 다소 두서없이 느껴졌으나, 진리와 가치 있는 삶을 향한 저자의 열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게 없었더라면 애당초 출가하려고 마음먹지도 않았을 터. 

 

독자들은 저자의 이러한 비상한 인생 행로에 일단은 관심이 끌려 책을 집어들게 된다(스웨덴 방송국에서 그를 인터뷰한 이유도 그것일 테다).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숲속으로 출가했다고? 17년이나 승려로 생활했다면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깨달음을 선사하겠지? 저자가 독자에게 어떤 특별한 위로와 지혜의 메시지를 전할지, 독자들은 일단 주목한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그다지 특별한 메시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 "좋은 말"인데, 그게 마음에 콕 와닿지는 않는다. 내 마음이 닫혀 있는 탓일까.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맞는 말, 좋은 말이지.. 부정할 수 없이 "옳은" 메시지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의 글이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고 평한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본의나 진심과는 별개로, 이런 글은 글 자체로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물론, 삶이 글보다 중요한 건 맞다. 삶에 값하지 못하는 위선적이고 허무맹랑한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많은 명상 서적이 이런 함정에 빠진다. 저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겠지만 "맞는 말, 좋은 말 대잔치" 책에 나는 독자로서 좀 지쳤다. 그나마 책의 핵심 메시지라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7년간 숲속에서 수행해 얻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p.8)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면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마법의 주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p.130)

 

그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매우 특별한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책의 중심 메시지로 삼았다면, 각각의 메시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어땠을까. 더 이상의 전개 없이 흐름이 뚝 끊어진 채 다음의 '좋은 말'로 넘어가는 글의 전개가 다소 아쉬웠다. 

 

저자의 깨달음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의 깨달음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체득했는지도 자신 없고 부끄럽다. 하지만 "전 세계를 울린 이 시대의 마지막 지혜" "스웨덴 30만부 판매" 등의 대단한 수식어에 비해, 그만큼 새롭고 특별한 울림이 담긴 책으로 보이진 않았다. 글쎄, 그런 메시지를 이런 책에서 구하는 것 역시 나의 욕심일까 . 그 욕심마저 알아차리고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다음은 책에서 발견한 오타: 

 

p.64 밑에서 셋째 줄: 오계(伍戒, 한자 오류) -> 오계(五戒)

p.65 밑에서 아홉째 줄: "아버지가 그어놓은 과도한 근본주의와 아닌 것의 경계선이나 다름없었습니다."(문장 의미 불분명)

p.144 위에서 셋째 줄: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습니다" -> "통하지 않았습니다."

p.221 밑에서 열째 줄: "다른 사람들도 온전한 사랑을" -> "다른 사람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p.261 위에서 아홉째 줄: 대오(大惡) -> 대오(大悟)(한자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