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
이 영화는 두개의 길(道)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산(茶山)의 길(道)과 자산(玆山)의 길(道). 감독은 이에 대해서 부정하고는 있지만 영화 예고편에서부터 이를 대비시키고 있음을 부정할수 없다.
목민심서의 길과 자산어보의 길을 대응시켜, 창대가 정약전과의 인연을 끊고 목민심서의 길을 택했으나 결국 상처만 가지고 자산어보의 길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정약전을 부각시킨 영화이다.
이준익의 영화 '동주'와 '박열'을 보고 나서 이 감독이 다음에는 또 어떠한 지혜로서 역사속에서 또 어떤 인물을 끄집어 낼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자산 정약전이 소개되자 나는 잔잔한 흥분으로 감탄할수 밖에는 없었다.
소재의 발굴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다만 자산의 자산어보를 가지고 정말 영화를 만들수 있을까? 자산어보를 통해서 할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라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은 누구나 생각할수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더우기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대립되는것으로서 다산을 설정하였다. 소재는 비범했으나 이야기는 평범한..
"목민심서 vs 자산어보"
물론 목민심서의 길을 가지 못하는 조선후기 상황을 자산어보에 대응시키려는 노력은 보였으나 영화 예고편에서 강하게 어필되었던 위의 3개의 장면이 영화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 구성도 영화 전반의 귀양에 이르는 과정 전개(12분)와 창대와 자산의 지식거래 성사까지(40분)가 너무나 지루했고, 흑산도에서의 생활모습들은 배우의 개성에 밀려 영화속에 녹아들지 못했으며, 영화 후반의 창대의 진사 생활속 절망은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어 스토리의 부분별 속도감은 조화를 나타내지 못하고 그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질수 밖에 없었다. 코만 여러번 간지럽고 재채기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의 지속.. 결국 스토리는 긴장과 갈등의 고조도 해소도 없이 방황만 하다가 어색하게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어류연구에 대한 내용들과 영화에서 일부 보여진 장뚱어의 식용화 등 실사구시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다큐멘터리화되지 않게 재미있게 풀어나가면서 현실과 대비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과 민중의 본질을 찾아갔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백의 색채에 더욱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2. 촬영
흑백영화는 대단한 모험일수 밖에 없다. 흑백이 흑백으로서의 완성도를 갖기 위해서는 그 필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지 기교를 위한 흑백은 컬러에서의 채도조절로 나타낼수 있는 효과에 미치지 못한다.
'동주'에서 흑백은 성공하였다. 감독이 의도한 ‘우리들 기억의 소환'이라는 필연성에서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자산어보'에서 흑백의 의도에 대해서 감독은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며, 어둠을 깊이있게 다루고 싶어서' 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필연성이 아닌 특이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흑보다는 백을 더 느낄수 있을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영화속에서 이러한 모순된 의도를 충분히 공감할수 있었을까? 어둠에 대한 의도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보아지지만 날카로움은 무뎠고 백에 대한 의도는 철저히 실패로 보여진다. 영화속에서 백색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그 또한 전통 수묵화에서 볼수 있는 미로서의 밝음으로 보일수 있었던가? 그리고 전혀 볼수 없는 먹의 농담. 영화속 흑백은 전반적으로 무거움만 느껴져서 안그래도 어두운 영화관 공간속에서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 무게는 뭐지 라고 생각해보다가 영화 말미에서 해답을 찾을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동주'를 촬영한 최용진 감독을 생각했었으나 다른 촬영감독이었다. 물론 그 분또한 변산을 같이 작업한 훌륭한 촬영감독이지만 흑백영화와는 이질적이었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라기 보다는 흑백필름을 사용한 영화라고 단정한다면 너무 가혹할지는 모르겠으나 명도,채도,질감, 보정에 까지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영화 내내 나라면 어떻게 촬영했을까를 수없이 되뇌었다. 화면 전체가 너무 밋밋한 느낌이었다. 수묵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묵화로서의 먹의 농담은 한국의 소정(小亭)이나 중국의 리커란을 흉내낸 학생작품에 불과하다.
이준익과 '동주'를 작업한 최용진이 지난해 촬영한 소리꾼을 보고는 조선시대의 암울한 상황과 지배층 피지배층의 대비를 정말 잘 촬영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최용진이 '자산어보'를 촬영했더라면 화면질감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대비뿐만 아니라 로마의 휴일처럼 흑산도 풍광 또한 컬러보다도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최용진 촬영감독이 어려웠다면 오멸의 '지슬'에서 촬영감독을 맡았던 양정훈과 작업을 했었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본다.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컬러를 제거하는데는 양정훈 감독만한분이 없다. 이 영화에서 두고두고 가장 크게 아쉽고 부족한 것은 촬영이다.
3. 연기
다들 감탄하는 부분이라 덧붙일말이 별로 없다. 그리고 흑백영화로서 그 촬영의 완성도가 매우 떨어지지만 흑백이 갖는 공통적인 속성으로서의 인물의 디테일은 더욱 살아난듯하여 명 연기들을 더욱 돗보이게 한다. 여러 배우의 연기에는 일부 아주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대단히 만족한다.
4. 옥의 티
창대가 다산 선생을 찾아가서 그 제자와 5언절구 시가 배틀을 하는데 정말 웃겨서 죽는줄 알았다.
직접 지어서 하지는 못하더라도 당대 명문가들의 시들을 짜집기 식으로라도 했으면 넘어갔을텐데 다산 선생앞에서 다산의 유명한 시인 독소(獨笑: 홀로 웃지요) 를 두구절씩 서로 번갈아가며 읊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게 배틀인가 하고 파안 대소 ㅋㅋ
이 시는 지하철 여러곳에도 걸려있는 유명한 시이다.
5. 후속작
내가 처음 놀랬던 이준익 감독의 작품은 라디오 스타였고 동주에서 그에 대한 기대치는 최고조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질적인 두가지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또 다른 소재는 없을까?
영화 중간에 나오는 문순득의 표해시말(漂海始末)이 어떨까 생각든다. 사도나 동주에서 보여주었던 역사극의 능력을 기반으로 라디오 스타의 인간미, 황산벌의 재미까지 더해진다면 이준익의 역작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6. 기타
영화가 끝나며 이준익 감독이 뭔가에 쫓겨서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벼락밤샘하는 시험공부나 미루어 두었던 레포트를 제출마감일 직전에 부랴부랴 하는 듯한 느낌..
두서없이 온라인상에서 막 써내려가다보니 오타도 있을것 같습니다만 양해를 구합니다.
(한줄평) 필연성이 부족했던 흑백 촬영, 갈길 모르고 방황하던 시나리오, 식어버린 감독의 열정 속에 오직 하나 빛난 것은 배우들의 연기.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시나리오건, 쵤영이건, 연출이건 쪼개고 분석하지 마세요. 영화적 관점보다는 역사인물로서의 자산의 의식세계에만 집중하세요. 모든 영화적 요소들은 덤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면 실망하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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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영화가 아닌 디지털영화라는 의견이 있어 의견을 덧붙입니다. (4월13일)
이미 필름 영화가 멸종되었다는 누구나 아는 상식위에서 '필름'이라는 단어를 '방법 내지는 도구'란 의미로 사용한 것인데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것에 반성합니다.
'설국(2013)'이 한국의 마지막 필름영화였죠. 서울필름현상소도 2014년 문을 닫아 더이상 한국에서는 필름 현상이 불가능합니다. 필름 매니어인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도 필름을 완전 포기하고 디지털로 돌아서 ALEXA65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디지털기기가 빠르게 진화하여 '동주'때의 장비보다 '자산어보'의 장비가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상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은 촬영장비에만 의존되는 것이 아님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하여 성공한 흑백영화 ‘맬컴앤매리’처럼 인물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않고 ‘자산어보’에서는 자연과 군상까지 욕심부리며 '흑백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것은 모험이고 천재적 능력이 요구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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