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예/영화 리뷰

[보이저스]보이저스[Voyagers]

이태원프리덤@ 2021. 6. 2. 17:01

보이저스[Voyagers]_민주주의로의 여정 ▒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했던 말이다.

“민주주의란 완전무결주의가 아니라, 개선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는 말도 있다.

세계 역사를 거쳐 수많은 정치 체제가 명멸(明滅)했지만, 그래도 올곧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거의 유일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루즈벨트의 말마따나 그간 행진을 통해 완전무결을 향해 끊임없이 개선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피와 희생이 수반돼 왔다.

그러한 점에서 민주주의는 목적을 향해 계속되는 일종의 ‘항해(voyage)’와 같다.


「다이버전트 시리즈(The Divergent Series)」의 첫 작품, 「다이버전트(Divergent)」로 친숙한 '닐 버거(Neil Burger)' 감독이 선보인 「보이저스(Voyagers)」는 밀폐된 공간인 우주선 안에서, 완벽한 우성 인자로 태어난 10대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이를 가로막는 난관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의 개척이 아닌,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정치체제를 구축해 나간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결코 쉽게 태동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때는 2063년.

지구는 극심한 온난화로 미래 세대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완벽한 우성 인자로 실험실에서 태어난 후 훈련을 받은 어린 30명의 탐사대원들을 우주선 휴매니타스호(號)에 탑승시켜, 수백년이 소요되는 새로운 행성으로 보낸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이끌 선장으로 리처드(콜린 파렐扮)가 지원한다.

세월이 흘러 탐사대원들은 10대 후반이 되고, 이중 하나인 크리스토퍼(타이 쉐리던扮)은 자신들이 섭취하는 영양제 ‘블루’의 효과를 의심하고, 이를 절친인 잭(핀 화이트헤드扮)과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는 자유분방, 육욕(肉慾) 등 인간 본능이 꿈들대기 시작한다.

선장 리처드는 엄격한 매뉴얼을 지킬 것을 강요하지만, 유독 셀라(릴리-로즈 뎁扮)에게만은 지구의 기억을 공유한다.

선장 몰래 블루 복용을 중단한 크리스토퍼와 잭은 셀라에게 욕정을 갖게 되고, 선장인 리처드는 이를 억제한다.

그러던 사이, 우주선에 결함이 발견되고, 선장 리처드는 크리스토퍼와 함께 이를 수리하기 위해 유영(游泳)을 하게 된다.

하지만 원인 모를 사고로 인해 리처드는 사망하고, 대원들은 투표를 통해 크리스토퍼를 리더로 선출한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잭은 리처드의 사망원인이 외계인 때문이고, 우주선 안에 외계인이 침투했다는 공포를 조성하며 대원들을 선동한 뒤, 자신이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우주선은 방탕과 무질서가 지배한다.

새로운 행성 개척이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신념 하에, 크리스토퍼와 셀라, 그리고 소수 대원들은 이에 저항한다.

무엇보다 리처드의 사망 원인(잭과 그 일당에 의한 기계 조작)을 밝혀내고, 이를 공론화한다.

그럼에도 대원들의 마음은 공포 해소, 그리고 방탕을 내세운 잭으로 기운다.

점점 더 고립무원이 돼가는 크리스토퍼와 셀라.

둘은 자신들을 박멸하려는 잭과 그 일당에 대항해, 임무 수행을 위한 일전에 나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

한 세대 안에 태동해 착근(着根)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하나씩 개선점을 마련해가면서 완전무결의 목표를 향해 가는 ’항해(voyage)’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저스(Voyagers)’의 의미는,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새로운 행성 개척)를 목표로 거쳐야 하는 기나긴 행진(항해)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난관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선장 리처드와 매뉴얼 대로 행동하던 때는, 우리의 초기 정치체제인 왕권을 기초로 한 전제주의와 닮았다.

그러다 전제주의가 붕괴한 뒤, 선택한 것은 유아 상태의 민주주의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두서 없는 정책의 추진, 강력한 통제력이 실종된 상황에서 고개를 드는 것은 ‘독재(獨裁)’와 ‘인기 영합주의(포퓰리즘)’다.

독재는 공포가 전제돼야 한다.

그 공포가 외부에 의한 것이든, 내재된 것이든 상관없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포가 있어야, 내부 단속이 쉬워져서다.

「보이저스」에서 등장하는 공포는 바로 외계인이다.

외계인이 지금까지의 평온을 깨뜨린 주범이자, 자신들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 만큼, 단일대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독재가 필요하다. 공포에 맞서는 다른 형태의 공포정치가 제격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이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를 자극하며 통치를 정당화했던 시절이 오버랩된다.


독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내부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정치적 견해를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이럴 때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정책, ‘포퓰리즘(Populism)’이 가장 좋다.

배부름과 방종, 때로는 육욕을 해결해주는 게 현명하다.

대중들이 포퓰리즘을 통해 우매화(愚昧化)될 때, 독재의 길은 상대적으로 편안해진다.

「보이저스」에서 잭은 이를 충실히 따른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정책, 지금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대증적 요법으로 내부 단속을 이끌어낸다.

마치 5공 전두환 정권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취했던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 등 3S 정책을 연상시킨다.

포퓰리즘을 통한 우민(愚民)은 독재의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렇듯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정책, 권력자가 존재함에도, 이를 이겨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정책을 보완해나간다.

투표와 합의를 통해 목표를 지향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여정이 현재 진행형이다.

‘voyage’가 진행되는 한, 우리는 ’progress’할 수 있다.


 

배우 '콜린 파렐(Colin Farrell)'은 재능 기부의 성격이 짙다. 아니면,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거나.

배우 중 유독 눈길이 간 사람은 대원 중의 하나로 등장한 '아이작 헴프스터드 라이트(Isaac Hempstead Wright)'다.

이름이 생소한 것 같지만, 그 유명한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브랜 스타크' 역을 맡았던 배우다.

「왕좌의 게임」을 보면, 브랜 스타크의 비중은 시리즈의 축(軸)에 해당한다.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은 만큼, 향후 행보도 기대가 됐지만, 현재로선 그저그런 배우로 전락한 것 같다.

'소피 터너(Sophie Turner), '메이지 윌리엄스(Maisie Williams)', '리처드 매든(Richard Madden) 등 「왕좌의 게임」에서 스타크 가문의 자녀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승승장구한 것에 비교된다.

그래도 그에게도 볕들 날이 있을 게다.


 

'J.F.케네디(John F. Kennedy)'는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우수한 통치형태이다. 그것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서 존경하는 데 기초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구성원인 인간이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결국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 관계다.

영화 「보이저스」에서 크리스토퍼가 줄기차게 외치는 것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이성적임을 상실할 때,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공포와 포퓰리즘, 이를 숙주로 한 독재가 그 위협이다.


민주주의가 완전한 정치체제가 아닌, 차선(次善)인 만큼, 그 여정(voyage)은 길고도 험난하다.

그럼에도 길고 험난한 여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과정이다.

그리고 그 수혜자는 우리의 미래세대다.